가을

날이 좋다. 휴가를 내서 더 그런지도. 배터리가 없는 이어폰을 들고 나섰지만 기분이 좋았다. 호기롭게 마음에 드는 신발을 골라 샀다. 보고싶은 사람이 있다. 그것만으로도 오늘 하루가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Standing on the platform

사실은 나도 그런 사람이 될까봐 두렵다. 너를 지나간 사람 중 하나가 되어, 나는 영원히 알수도 없는 이에게 무용담처럼 말하게 되는 그런 사람이.

나도 그런 연애 한적 있어. 같은 에피소드의 주인공이라던지 혹은 최악의 전여친 같은 것으로 회자될런지도 모른다. 그런 말들로 남겨지는 것은 너무 슬프겠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나는 그런식으로 입에 오르내렸겠지.

어떤 관계던 바람이 들나들 수 있을만큼 선선해야 한다던데. 내 마음 속 기저에 남은건 질퍽 질퍽한 자기혐오 뿐이다.

오래전에는 오히려 관계를 위해 참거나 견디는 것이 많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해야하는 것인줄 알았다. 이별의 원인 역시 내게서 찾았다. 지금 그 무렵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그러니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런 시기가 지나고선 누굴 만나도 똑같다는 생각에 정말 마음가는대로 행동했는데, 그래서 그런 것인진 모르겠으나 정말로 그렇게 진지하게 사랑 을 할만한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다만 그런 관계 속에서 나는 멋대로 구는 나 자신을 언제나 혐오했으며, 금방 진절머리가 나서 끝도 내멋대로 내곤 했다. 지금도 별로 후회스럽지는 않다. 그 무렵을 지나면서 오히려 연애를 적당히 하는 법을 익히게 된 것 같았다. 지금은 사실 잘 모르겠다. 하루키의 말처럼, 현재는 묘사하기 어렵다. 지나고 나야 떠올려 글로 쓸 수 있으리라. 마음대로 굴지 않고 노력하고 싶으면서도, 천성이 그런사람이 못되어서 결국 모난 구석을 보인다. 결론은 자기혐오로 끝나게 되는 것이다.

사랑은 언제나 지나가고, 이사람 아니면 안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건말건 사실 잘먹고 잘 살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제는 그렇다. 소모적이고 적당한 연애를 전전하는 것을 그만두고 싶다. 정말로 좋은 사람을 만나서 이런 기분이 드는 것일까? 만남과 동시에 결말부터 생각하는, 드라마도 영화도 스포없인 보지도 않던 나는 이제 어떤식으로든 끝을 생각하기가 두렵다.

아픈머리를 붙잡고 새벽 6시까지 인터넷 전화를 붙들고 있다가.

종로 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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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찬가

을지로, 명동, 소공동, 서소문쪽 혹은 그 위에 무교동 광화문 청계천 종로 아니면 더 올라 가서 인사동 서촌 북촌 일대에 이르는 이 서울 중심부를 나는 참 사랑한다. 이 동네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이 동네에 직장이 있어도 나는 쉬는 날에도 올 것 같을 만큼 너무너무 좋아한다.

스무살 때 부터 이 주변에서만 일을 하고 학원을 다녔고, 별일이 없어도 주기적으로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데이트도 하러 왔다. 나를 만났었던 이전의 연인들과 적어도 한번은 모두 이 주변에 왔고, 좋아하는 친구들이랑도 굳이 지하철을 타고 몇십 분을 달려와 이 곳에서 만났다. 종로의 젊음의 거리나 종각 일대에는 술집이 즐비한데, 직장인들로 가득찬 술집들 가운데에 있는 유학원이랑 학원을 다니다보면 그 이질감이 우스웠다. 서소문쪽에는 맛있는 콩국수집이 있다. 대한항공 건너편 건물 뭐더라.. 그 건물 1층이 다 스타벅스인데 천장이 높아서 비오는 날 거기 앉아 사람 구경하는 것도 재밌다. 좀 걸어가면 바로 시청인데 때때마다 시청 건물에 붙어있는게 달라지는걸 보는 재미도 있고, 밤이 되면 예쁜 불빛이 색깔을 바꿔가며 점멸하는게 예쁘다. 시청 광장 바로 앞에 있는 출구가 몇번 출구더라. 금연이라던 지하철역 입구에서 담배를 피우던 사람이 꽤 많아서 나는 거기서 그 사람들을 기다리고 서있던 적이 많다. 종로 5가부터 시청 쯤까지 걸어다니기도 했고, 인사동 초입에 있는 학원에 줄서서 들어가는걸 이상하게 쳐다보던 외국인들도 보았고, 계절마다 다른 테마의 청계천변을 걷다보면 없던 로맨틱함도 생기는 것 같기도 하고, 광화문 끄트머리 그 동화면세점 있는 곳에 가면 뭔가 서울의 끝 같고 세상의 끝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아직도 아무 볼일이 없어도 광화문엔 자주 가서 그냥 걸어다니기도 하고, 교보문고에 들어가 사람들 틈에서 책을 읽다가 한권 사서 나오기도 하고, 밤이 될 때까지 돌아다니거나 광화문역점 스타벅스에 앉아서 해가 지는걸 구경하기도 한다. 숭례문을 돌아나가는 버스를 타면 기분이 엄청 이상해지는데, 나는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숭례문을 본다. 그 부근을 안개낀 새벽에 술에 취해 걸어다니면서 숭례문을 오래오래 봤던 기억이 있다. 광화문에서 버스를 타면 서촌 골목골목을 갈 수 있는데 아무데나 내려서 보이는 귀여운 잡화점이나 옷가게 까페에 들어가보기도 한다. 무교동에는 맛집이 많다. 맛있는 순두부찌개를 파는 집, 코다리냉면, 돼지국밥, 갈비탕, 타코와사비가 괜찮은 집도 있다. 그 밑에 서울에서 외국인이 제일 많은 곳이 있고 엄청 큰 회사 빌딩들도 많은데 또 그 바로 옆 소공동에는 아직도 한문으로 된 간판의 오래된 양장점이 잔뜩 있고, 십분 십오분도 안걸리는 곳에는 한옥이 즐비하고, 너무 이상하면서도 사랑스러운 동네이다.

여름에는 서촌에 가야한다. 광화문에서 초록색 학원 버스같은 귀여운 버스를 타고 좀 올라가면 우리약국 골목으로 들어가는데 즉석 떡볶이가 맛있는 집도 있고, 가끔 땡기면 통인시장에서 기름떡볶이를 좀 먹어볼 수도 있겠고, 제일 중요한거는 야외에서 맥주를 마시는 감자집에 가야하는데 그 올라가는 길에 있는 유명한 수산물 파는 집을 아직도 못 가봤다. 가야지 하고 벼르고 있는데 여름엔 수산물 먹기 찝찝하기도 하고 항상 맥주를 마시러 가다가 생각이 나는 바람에 미루고 미뤄왔다. 올해는 꼭 가야지.

또 청계천 바로 앞에 있는 학원에 다니기로 했다. 그 부근에 가면 생각나는 사람들이 많지만 또 내 청춘을 함께하며 공부하러 일하러 열심히 다니던게 생각나서 오묘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 이번달 다음달 을지로 3가부터 학원까지 걸어다니면서 청계천 볼 생각하니까 괜히 설렌다. 서울살이는 너무 외롭지만 나는 아직도 서울이 좋다. 렌즈도 안경도 끼지 않아 뿌연 시야에 잡히는 그 무수한 불빛들 때문인 것 같다. 학원에서 나와서 광교쪽으로 걸어가면서 건물에 불이 잔뜩 켜져있는게 보이는데 이게 사실은 야근하느라 그런거란 생각이 들어서 어젠 어쩐지 좀 씁쓸하긴 했지만, 정말이지 어쩔 수 없이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곳. 종로 찬가라고 하기도 민망하게 이정도면 거의 서울의 4분의 1은 되는 범위를 써놓긴 했지만.

궁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서 제대로 가본적이 없는데, 이번 여름~가을에는 서울에 있는 궁이랑 능들을 다 가보려고 한다. 날이 맑고 선선할 때 그 동네에 많은 미술관에 좀 가보는 것도 좋겠다. 추억이 있는 곳들을 다시 다니면서 곱씹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괜히 특별할 것도 없는 청계천, 을지로 거리를 찍어보다가

어떤 것들은 아무리 애를 써도 그냥 사라진다 그렇게 잡아두려 애썼던 것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행복이란 과거를 회상할 때에만 가졌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인지
오늘 스물 두 살 이후로는 자기 나이가 어색하다던 언니에게 스물 두 살 때와 같은 결정을 내릴 수가 있느냐고 물었다 물론 서른이 된 언니는 그럴 수 없고 그 시절의 자신을 그리워할 뿐이다 누구나 그렇겠지 지나고보니 그 시절은 행복했다고 믿는 모양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스물 세 살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내 전부를 줄 수 있을 것 같다 영원히 스물 세 살로 살아갈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저주 받은 것처럼 늙어가겠지
어떤 것들은 스쳐지나갔지만 오랫동안 떠오른다 막상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상한 기억들만 남게된다 누군가에게 불멸하는 존재로 남는 것은 온전히 그사람 몫이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에밀 시오랑은 우리 안에 생각이 하나씩 생겨날 때마다 우리 안의 무언가가 부패하고 있는 것이라했다 어쩌면 다들 부패하여 백골만 남은 속내를 끌어안고 사는 것이 아닐까

 

Milky Chance – Stolen D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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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lky Chance – Stolen Dance

I want you by my side
네가 내 옆에 있었으면 좋겠어
So that I never feel alone again
또다시 너 없는 외로움을 느끼고 싶지 않아
They’ve always been so kind
그들은 언제나 우리에게 친절하게 대했지
But now they’ve brought you away from me
그리고 그런 그들이 우릴 갈라놨어
I hope they didn’t get your mind
그들이 너의 마음까지 가져가진 않았길 바래
Your heart is too strong, anyway
너의 마음은 언제나 굳세니까
We need to fetch back the time
우린 시간을 다시 되돌려야 해
They have stolen from us
그들이 우리에게서 훔쳐 간 시간을..

And I want you
널 사랑해
We can bring it on the floor
우린 지금 이곳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어
Never danced like this before
한 번도 이렇게 춤을 춰본 적은 없었지
We don’t talk about it
아무 말도 하지 마
Dancing on, do the boogie all night long
밤새도록 블루스에 맞춰 춤을 추는 거야
Stoned in paradise
우리들만의 파라다이스에 만취한 채 춤을 추는 거야
Shouldn’t talk about it
그 이야긴 절대 하지 않는 거야

Coldest winter for me
내게선 너무나도 추운 겨울이야
No sun is shining anymore
더 이상의 햇빛은 들어오지 않지
The only thing I feel is pain
내가 느낄 수 있는 건 오로지 고통뿐
Caused by absence of you
텅 비어있는 너의 자리가 날 고통스럽게 만들어
Suspense controlling my mind
나의 마음을 다스려보려 하지만
I cannot find the way out of here
이곳을 벗어나는 것 말고는 다른 해결책을 찾을 수 없어
I want you by my side
네가 내 옆에 있었으면 좋겠어
So that I never feel alone again
또다시 너 없는 외로움을 느끼고 싶지 않아

And I want you
널 사랑해
We can bring it on the floor
우린 지금 이곳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어
Never danced like this before
한 번도 이렇게 춤을 춰본 적은 없었지
We don’t talk about it
아무 말도 하지 마
Dancing on, do the boogie all night long
밤새도록 블루스에 맞춰 춤을 추는 거야
Stoned in paradise
우리들만의 파라다이스에 만취한 채 춤을 추는 거야
Shouldn’t talk about it
그 이야긴 절대 하지 않는 거야

 

너무 많은 연애

이 곡의 세 마디에서 떠오르게 된 생각을 적어본다.

 너무 많은 연애
내가 원하는 건 사랑뿐이었는데
누군가를 목 조르게 해

김사월 앨범은 그럴 때 듣는다. 너무 우울해서 바닥을 찍고나면 나아지지 않을까 싶을 때. 그렇지만 오늘은 정말로 랜덤재생 중에 우연히 들었다. 또 한 번의 연애의 종점을 목도하고 있는 오늘은 이 부분이 와닿다 못해 내 얘기 같아서 김사월이 미워지기까지 했다.

나이가 그리 많지도 않은데 이런말 하기 좀 우습지만 너무 지독하게 많은 연애를 하고 살았다. 정말 추억 하나 없는 사람들도 다 합쳐 세어보자면 두 손이 모자랄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남들이 납득할만한 개연성을 부여하려 부단히도 애를 썼다. 쉽게 질려해서 그래. 내 성격이 그래서. 이 사람이 알고보니 좋은 사람이 아니더라고. 같은. 본질적인걸 까발려보면 사실 내가 원하던 것은 사랑뿐이었던 모양이다. 그래 그랬겠지. 내가 심심해서 그 많은 연애를 했겠나. 나는 일관된 질량의 사랑을 원했던 것 뿐이다.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수많은 연애에서 악역을 자처했던 내 죄책감이 덜어지지는 않는다. 나는 아마 그만큼 많은 이들의 목을 졸랐을 것이다.

누군가를 목 조르게 해  라는 가사는 좀 이상한 구석이 있다. 너무 많은 연애들이 나로 하여금 누군가의 목을 조르게 한다는 뜻인지, 아니면 누군가가 내 목을 조르게 한다는 뜻인지. 어느쪽일지 한참 생각해 보았지만 양쪽 다 맞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누군가의 목을 조르는 사람이었겠지. 동시에 사랑찾아 감행했던 연애들이 내 목을 졸라왔음은 분명하다. 너무 많은 연애를 하고 나니, 누굴 만나도 마찬가지라는 체념과 동시에 그래도 어딘가에는 있지 않을까 하는 불쌍한 희망만 남았다. 생각 끝에 뭐라도 결론을 내야할 것 같아서, 연애에서 트루-러브를 원하는 것 자체가 멍청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려보았다.

김사월의 7102 라이브 앨범은 1집 보다 훨씬 날 것의 이야기를 한다. 수잔에서 더 나이브하게 사랑을 노래한다면, 7102에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밑바닥을 들여다본 것 같은 가사들로 묘하게 동족혐오가 인다. 아무도 몰랐으면 좋겠는 내 얘기 같아서. 어떻게 보면 7102에서 작위적임이 느껴질 수도 있지만, 꿈에서라도 용서해 달라는 보다는 자기혐오를 멈출수가 없다는 가 더 솔직해보이지 않나. 그래서 나를 마음껏 미워하고 싶을 때 이 앨범을 듣는다. 그래도 괜찮다고 해주는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