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여름

여기 들어와서 내 글을 읽으려는 사람이 있을까?  내 기저의 어떤 마음들을 궁금해하려는 사람이 한명은 있으려나. 종이 다이어리에 쓰느니만 못하다는 생각이 항상 들지만, 오랜만에 좀 적어보려 블로그를 켰다.

 

나는 내 스스로 자존감이 꽤 높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자존감이 높은건지 타인에게 의존하기 싫은건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나를 막 대하는 사람을 떠나지 못한다든지 하는 멍청한 짓은 잘 하지 않는다.

그래도 사람 관계라는게 내 뜻대로 되는 것만은 아니어서, 내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그만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을 때 조금 씁쓸해지곤 한다. 남의 마음을 어찌할 힘이 있으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면서도 마음 한 켠에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가 완벽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더라면? 돈이 정말 많았더라면? 아주 멋진 직업이나 좋은 성격을 가졌더라면? 어쩌면 상대방이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더 날 좋아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이 들면 타인이 나를 대하는 모든 것이 내 탓이 된다. 내가 가진 인간관계의 나쁜 면은 모두 내가 매력적이지 않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 되는 것이다. 대부분 내가 바꿀 수가 없는 사항들이다. 곧 슬퍼진다.

나는 내가 가진 수두룩한 단점을 잘 알고 있고, 그 있는 그대로 온전히 좋아할 사람이 있을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인간은 타인을 그렇게 전적으로 좋아할 수 없다. 나도 마찬가지로 남을 온전하게 좋아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에 남에게 그런걸 바라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사람들은 서로를 좋아하기 어렵기 때문에, 관계 유지를 위해 다들 노력을 한다. 그게 어떤 형태의 관계든 한쪽의 이해와 양보만으로는 유지될 수 없다.

뭐, 원론적인 얘기다. 실재의 관계들은 훨씬 복잡하고 기이하게 존재한다. 앉아서 내 이런 생각을 들어주는 사람도 사실은 없다. 내가 가지고 싶은 형태의 관계는 누구와도 이룰 수 없다. 누굴 만나도 외로울거라는 말은 그런 뜻이었나보다. 내가 너무 이상주의자라서, 아니면 동시에 너무 현실적이라서.

대답없음도 대답이다

대답 없음도 대답이다.

이 문장은 황경신의 에세이 「생각이 나서」에 나오는 구절이다.

2013년, 스무 살에서 스물 한 살 무렵 황경신의 책을 얼마나 많이 읽었는지, 당시 내 영혼이 자라는 데에 황경신이 적어도 삼할 정도는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지금도 황경신을 좋아하는 친구를 만나면 마음이 간다. 황경신은 원래 소설가지만, 소설보다는 에세이가 훨씬 더 좋다. 그리고 이 구절은, 그 어떤 작가의 문장보다도 내게 오래 남았다.

사실 별다를 것 없는 문장이다. Water is wet! 하지만 내가 마주한 모든 침묵을 곱씹어보자면 이 문장만큼 도움되는게 없다. 그들의 대답 없음은 확고한 대답이었으리라.

위 영상의 앞부분에, 하지무가 음성메세지 있느냐고 묻자 교환원(?)은 이렇게 답한다. 沒有,整天沒有人找你。아니요, 하루종일 아무도 당신을 찾지 않았네요. 아마 하지무는 한 달 동안 매일 같이 남겨진 음성메세지가 없다는 대답을 들으면서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대답 없음도 대답이고, 선택하지 않음도 선택이다.

하지무는 1994년 5월 1일 25살이 되었다. 저 영화를 처음 본건 고등학생 때 였던 것 같은데 내가 25살이 되었다. 오밤중에 혼자 계단에 앉아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는 것이야말로 새벽에 혼자 조깅을 하는 것보다 몇 배는 더 외롭다는 것이 이제야 보인다.

5월 1일을 맞이하여 다들 파인애플 통조림 얘기를 하지만, 사실 같은 날 임청하는 고민의 근원을 찾아가 총으로 쏴 죽여버렸다. 이 이야기가 사실은 그냥 홍콩 반환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 있다. 캔에 든 파인애플은 진짜 맛이 없다. 이제 스무살 때 처럼 가만히 앉아 5월 1일을 기다리지는 않을 것이다.

이름에 대해

어릴적부터 나는 그렇게 믿었다. 이름대로 산다고.

내 언니와 나는 이름 한 자를 돌림자로 썼다. 나머지 한 자는 언니는 지혜롭다는 뜻, 나는 예쁘다는 뜻을 썼다. 공교롭게도 언니는 나보다 훨씬 똑똑하고 공부를 잘했다. 나는 항상 언니보다 더 예쁘게 생겼다는 소릴 들었다(언니보다 공부를 못해서 할말이 없던 어른들이 한 빈말일지도 모른다. 내가 공부를 못하는게 아니라 언니가 너무 심하게 잘했다).

그리고 조금 웃기지만, 우리 엄마는 엄 씨였고, 내가 하루가 멀다하고 가던 치과 의사선생님 이름에는 의 자가 들어갔다. 사주를 볼 때도 생일과 이름만 있으면 되었다. 의심할 것도 없이, 어린 나는 이름과 삶에 긴밀한 관계가 있다고 굳게 믿기 시작했다.

문학이나 영화에도 주인공 이름은 항상 의미심장하다. 아비정전의 아비阿飛는 죽을 때에만 땅에 내려오는 새로 묘사된다. 이름 자체가 난다는 뜻이다. 평생 떠돌며 나는 새의 이름으로 알맞다. 사실 작품에 나오는 이름에 대해 얘길 하자면 끝도 없다.

나는 중국어를 전공했고, 이름과 한자에 대해 중국인 친구들과 대화 나눌 기회가 많았다. 이름자를 보고 농담을 할 줄도 알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나도 모르게 누굴 처음 만나 관심을 가지게 되면 이름 한자를 물어보곤 했다. 한국인들은 대개 아주 의아해하지만, 떨떠름한 얼굴로 한자를 알려주곤 한다. 그럼 나는 아주 즐거워하면서 이름과 그 사람의 인상이 맞아 떨어지는지 고민해보는 식이었다.

누구나 이름에 얽힌 이야기 하나쯤은 있다. 이름에 딱히 의미가 없더라도 그렇다. 여권이나 호적, 신용 카드의 이름에 어떤 실수가 있었다거나, 한국에선 평범한 성씨가 어느 나라에선 바보라는 의미라서 곤란하다거나 뭐 그런 재미난 이야기를 하나씩 다들 가지고 있었다. 이름을 알면 상대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음은 분명하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한번 이름자를 물어봐야지. 하고 네 영어 이름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從你的全世界路過

https://youtu.be/Wtxma4mPdCs

중국인들이 부러울 때가 있다. 중국인들은 한자를 입력하는 불편함 때문에 위챗 보이스챗(语音) 기능을 많이 쓰는데, 상대방의 목소리를 자연스럽게 한 두개쯤은 갖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인이라면 상대의 목소리를 저장해두려면.. 좀 크리피한 방법을 써야하기 마련인데.

그래서 중국 드라마나 영화에서조차 상대방을 그리워할 때 예전에 했던 대화에서 목소리를 찾아듣는 장면이 나오곤 한다. 지나간 사람의 목소리가 기억나지 않아서 발신번호 제한으로 전화를 걸 필요가 없다는거지.

《從你的全世界路過》는 소설이 인기를 얻을 무렵 책으로 먼저 읽었다. 유치한 사랑이야기가 세상에서 제일 슬프다.

평행우주의 우리는 그 다음에 만나 손을 잡았을까?

우리 시대의 추억 : 잔나비,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

 

애플뮤직이 지겨워져 몇 년만에 멜론 정기결제를 시작했다. 만다린 팝이 거의 없어서 후회했지만, 잔나비 노래가 있어서 처음으로 이 노래의 가사를 봤다. 추억에 갈피를 꽂고 남몰래 펼쳐본다는 것이 뭘까.

우리 시대에서 추억의 갈피를 다시 펼쳐 본다고 하면 클라우드에 올려놓은 사진 다시보기 정도 되려나. 카톡 캡쳐, 인스타 보관함, 지나간 사람의 블로그 뭐 그런 것들. 스마트폰을 놓지 못해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s)라는 말까지 나온 시대에, 멍하게 누워 추억을 곱씹는다던가 하는 행위를 쉽게 떠올리기엔 부자연스럽기까지 하다. 묘하게 김창완 시대의 노래 모양을 하고 있지만 시대 감성은 따라할 수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어벤져스:엔드게임을 보기 전에 어벤져스 시리즈를 하나씩 보고 있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 이런 부분이 나온다. 화면엔 데이터가 모두 삭제되었다는 메세지가 뜨고, 모두 당황하지만 스티븐 혼자 침착하게 박스에 담긴 종이 기록물을 가져온다. 모든 것이 지워진 것은 아니라며.

계정을 바꿔가며, 플랫폼을 옮겨가며 일기를 적는 사람들은 아직도 많지만, 버튼 몇 번 누르면 흔적도 없이 없앨 수 있다는 점에서 추억 자체의 무게가 조금 가벼워진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