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답없음도 대답이다

대답 없음도 대답이다.

이 문장은 황경신의 에세이 「생각이 나서」에 나오는 구절이다.

2013년, 스무 살에서 스물 한 살 무렵 황경신의 책을 얼마나 많이 읽었는지, 당시 내 영혼이 자라는 데에 황경신이 적어도 삼할 정도는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지금도 황경신을 좋아하는 친구를 만나면 마음이 간다. 황경신은 원래 소설가지만, 소설보다는 에세이가 훨씬 더 좋다. 그리고 이 구절은, 그 어떤 작가의 문장보다도 내게 오래 남았다.

사실 별다를 것 없는 문장이다. Water is wet! 하지만 내가 마주한 모든 침묵을 곱씹어보자면 이 문장만큼 도움되는게 없다. 그들의 대답 없음은 확고한 대답이었으리라.

위 영상의 앞부분에, 하지무가 음성메세지 있느냐고 묻자 교환원(?)은 이렇게 답한다. 沒有,整天沒有人找你。아니요, 하루종일 아무도 당신을 찾지 않았네요. 아마 하지무는 한 달 동안 매일 같이 남겨진 음성메세지가 없다는 대답을 들으면서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대답 없음도 대답이고, 선택하지 않음도 선택이다.

하지무는 1994년 5월 1일 25살이 되었다. 저 영화를 처음 본건 고등학생 때 였던 것 같은데 내가 25살이 되었다. 오밤중에 혼자 계단에 앉아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는 것이야말로 새벽에 혼자 조깅을 하는 것보다 몇 배는 더 외롭다는 것이 이제야 보인다.

5월 1일을 맞이하여 다들 파인애플 통조림 얘기를 하지만, 사실 같은 날 임청하는 고민의 근원을 찾아가 총으로 쏴 죽여버렸다. 이 이야기가 사실은 그냥 홍콩 반환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 있다. 캔에 든 파인애플은 진짜 맛이 없다. 이제 스무살 때 처럼 가만히 앉아 5월 1일을 기다리지는 않을 것이다.

이름에 대해

어릴적부터 나는 그렇게 믿었다. 이름대로 산다고.

내 언니와 나는 이름 한 자를 돌림자로 썼다. 나머지 한 자는 언니는 지혜롭다는 뜻, 나는 예쁘다는 뜻을 썼다. 공교롭게도 언니는 나보다 훨씬 똑똑하고 공부를 잘했다. 나는 항상 언니보다 더 예쁘게 생겼다는 소릴 들었다(언니보다 공부를 못해서 할말이 없던 어른들이 한 빈말일지도 모른다. 내가 공부를 못하는게 아니라 언니가 너무 심하게 잘했다).

그리고 조금 웃기지만, 우리 엄마는 엄 씨였고, 내가 하루가 멀다하고 가던 치과 의사선생님 이름에는 의 자가 들어갔다. 사주를 볼 때도 생일과 이름만 있으면 되었다. 의심할 것도 없이, 어린 나는 이름과 삶에 긴밀한 관계가 있다고 굳게 믿기 시작했다.

문학이나 영화에도 주인공 이름은 항상 의미심장하다. 아비정전의 아비阿飛는 죽을 때에만 땅에 내려오는 새로 묘사된다. 이름 자체가 난다는 뜻이다. 평생 떠돌며 나는 새의 이름으로 알맞다. 사실 작품에 나오는 이름에 대해 얘길 하자면 끝도 없다.

나는 중국어를 전공했고, 이름과 한자에 대해 중국인 친구들과 대화 나눌 기회가 많았다. 이름자를 보고 농담을 할 줄도 알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나도 모르게 누굴 처음 만나 관심을 가지게 되면 이름 한자를 물어보곤 했다. 한국인들은 대개 아주 의아해하지만, 떨떠름한 얼굴로 한자를 알려주곤 한다. 그럼 나는 아주 즐거워하면서 이름과 그 사람의 인상이 맞아 떨어지는지 고민해보는 식이었다.

누구나 이름에 얽힌 이야기 하나쯤은 있다. 이름에 딱히 의미가 없더라도 그렇다. 여권이나 호적, 신용 카드의 이름에 어떤 실수가 있었다거나, 한국에선 평범한 성씨가 어느 나라에선 바보라는 의미라서 곤란하다거나 뭐 그런 재미난 이야기를 하나씩 다들 가지고 있었다. 이름을 알면 상대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음은 분명하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한번 이름자를 물어봐야지. 하고 네 영어 이름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從你的全世界路過

https://youtu.be/Wtxma4mPdCs

중국인들이 부러울 때가 있다. 중국인들은 한자를 입력하는 불편함 때문에 위챗 보이스챗(语音) 기능을 많이 쓰는데, 상대방의 목소리를 자연스럽게 한 두개쯤은 갖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인이라면 상대의 목소리를 저장해두려면.. 좀 크리피한 방법을 써야하기 마련인데.

그래서 중국 드라마나 영화에서조차 상대방을 그리워할 때 예전에 했던 대화에서 목소리를 찾아듣는 장면이 나오곤 한다. 지나간 사람의 목소리가 기억나지 않아서 발신번호 제한으로 전화를 걸 필요가 없다는거지.

《從你的全世界路過》는 소설이 인기를 얻을 무렵 책으로 먼저 읽었다. 유치한 사랑이야기가 세상에서 제일 슬프다.

평행우주의 우리는 그 다음에 만나 손을 잡았을까?

우리 시대의 추억 : 잔나비,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

 

애플뮤직이 지겨워져 몇 년만에 멜론 정기결제를 시작했다. 만다린 팝이 거의 없어서 후회했지만, 잔나비 노래가 있어서 처음으로 이 노래의 가사를 봤다. 추억에 갈피를 꽂고 남몰래 펼쳐본다는 것이 뭘까.

우리 시대에서 추억의 갈피를 다시 펼쳐 본다고 하면 클라우드에 올려놓은 사진 다시보기 정도 되려나. 카톡 캡쳐, 인스타 보관함, 지나간 사람의 블로그 뭐 그런 것들. 스마트폰을 놓지 못해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s)라는 말까지 나온 시대에, 멍하게 누워 추억을 곱씹는다던가 하는 행위를 쉽게 떠올리기엔 부자연스럽기까지 하다. 묘하게 김창완 시대의 노래 모양을 하고 있지만 시대 감성은 따라할 수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어벤져스:엔드게임을 보기 전에 어벤져스 시리즈를 하나씩 보고 있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 이런 부분이 나온다. 화면엔 데이터가 모두 삭제되었다는 메세지가 뜨고, 모두 당황하지만 스티븐 혼자 침착하게 박스에 담긴 종이 기록물을 가져온다. 모든 것이 지워진 것은 아니라며.

계정을 바꿔가며, 플랫폼을 옮겨가며 일기를 적는 사람들은 아직도 많지만, 버튼 몇 번 누르면 흔적도 없이 없앨 수 있다는 점에서 추억 자체의 무게가 조금 가벼워진 것은 아닐까?

종로 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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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찬가

을지로, 명동, 소공동, 서소문쪽 혹은 그 위에 무교동 광화문 청계천 종로 아니면 더 올라 가서 인사동 서촌 북촌 일대에 이르는 이 서울 중심부를 나는 참 사랑한다. 이 동네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이 동네에 직장이 있어도 나는 쉬는 날에도 올 것 같을 만큼 너무너무 좋아한다.

스무살 때 부터 이 주변에서만 일을 하고 학원을 다녔고, 별일이 없어도 주기적으로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데이트도 하러 왔다. 나를 만났었던 이전의 연인들과 적어도 한번은 모두 이 주변에 왔고, 좋아하는 친구들이랑도 굳이 지하철을 타고 몇십 분을 달려와 이 곳에서 만났다. 종로의 젊음의 거리나 종각 일대에는 술집이 즐비한데, 직장인들로 가득찬 술집들 가운데에 있는 유학원이랑 학원을 다니다보면 그 이질감이 우스웠다. 서소문쪽에는 맛있는 콩국수집이 있다. 대한항공 건너편 건물 뭐더라.. 그 건물 1층이 다 스타벅스인데 천장이 높아서 비오는 날 거기 앉아 사람 구경하는 것도 재밌다. 좀 걸어가면 바로 시청인데 때때마다 시청 건물에 붙어있는게 달라지는걸 보는 재미도 있고, 밤이 되면 예쁜 불빛이 색깔을 바꿔가며 점멸하는게 예쁘다. 시청 광장 바로 앞에 있는 출구가 몇번 출구더라. 금연이라던 지하철역 입구에서 담배를 피우던 사람이 꽤 많아서 나는 거기서 그 사람들을 기다리고 서있던 적이 많다. 종로 5가부터 시청 쯤까지 걸어다니기도 했고, 인사동 초입에 있는 학원에 줄서서 들어가는걸 이상하게 쳐다보던 외국인들도 보았고, 계절마다 다른 테마의 청계천변을 걷다보면 없던 로맨틱함도 생기는 것 같기도 하고, 광화문 끄트머리 그 동화면세점 있는 곳에 가면 뭔가 서울의 끝 같고 세상의 끝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아직도 아무 볼일이 없어도 광화문엔 자주 가서 그냥 걸어다니기도 하고, 교보문고에 들어가 사람들 틈에서 책을 읽다가 한권 사서 나오기도 하고, 밤이 될 때까지 돌아다니거나 광화문역점 스타벅스에 앉아서 해가 지는걸 구경하기도 한다. 숭례문을 돌아나가는 버스를 타면 기분이 엄청 이상해지는데, 나는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숭례문을 본다. 그 부근을 안개낀 새벽에 술에 취해 걸어다니면서 숭례문을 오래오래 봤던 기억이 있다. 광화문에서 버스를 타면 서촌 골목골목을 갈 수 있는데 아무데나 내려서 보이는 귀여운 잡화점이나 옷가게 까페에 들어가보기도 한다. 무교동에는 맛집이 많다. 맛있는 순두부찌개를 파는 집, 코다리냉면, 돼지국밥, 갈비탕, 타코와사비가 괜찮은 집도 있다. 그 밑에 서울에서 외국인이 제일 많은 곳이 있고 엄청 큰 회사 빌딩들도 많은데 또 그 바로 옆 소공동에는 아직도 한문으로 된 간판의 오래된 양장점이 잔뜩 있고, 십분 십오분도 안걸리는 곳에는 한옥이 즐비하고, 너무 이상하면서도 사랑스러운 동네이다.

여름에는 서촌에 가야한다. 광화문에서 초록색 학원 버스같은 귀여운 버스를 타고 좀 올라가면 우리약국 골목으로 들어가는데 즉석 떡볶이가 맛있는 집도 있고, 가끔 땡기면 통인시장에서 기름떡볶이를 좀 먹어볼 수도 있겠고, 제일 중요한거는 야외에서 맥주를 마시는 감자집에 가야하는데 그 올라가는 길에 있는 유명한 수산물 파는 집을 아직도 못 가봤다. 가야지 하고 벼르고 있는데 여름엔 수산물 먹기 찝찝하기도 하고 항상 맥주를 마시러 가다가 생각이 나는 바람에 미루고 미뤄왔다. 올해는 꼭 가야지.

또 청계천 바로 앞에 있는 학원에 다니기로 했다. 그 부근에 가면 생각나는 사람들이 많지만 또 내 청춘을 함께하며 공부하러 일하러 열심히 다니던게 생각나서 오묘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 이번달 다음달 을지로 3가부터 학원까지 걸어다니면서 청계천 볼 생각하니까 괜히 설렌다. 서울살이는 너무 외롭지만 나는 아직도 서울이 좋다. 렌즈도 안경도 끼지 않아 뿌연 시야에 잡히는 그 무수한 불빛들 때문인 것 같다. 학원에서 나와서 광교쪽으로 걸어가면서 건물에 불이 잔뜩 켜져있는게 보이는데 이게 사실은 야근하느라 그런거란 생각이 들어서 어젠 어쩐지 좀 씁쓸하긴 했지만, 정말이지 어쩔 수 없이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곳. 종로 찬가라고 하기도 민망하게 이정도면 거의 서울의 4분의 1은 되는 범위를 써놓긴 했지만.

궁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서 제대로 가본적이 없는데, 이번 여름~가을에는 서울에 있는 궁이랑 능들을 다 가보려고 한다. 날이 맑고 선선할 때 그 동네에 많은 미술관에 좀 가보는 것도 좋겠다. 추억이 있는 곳들을 다시 다니면서 곱씹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괜히 특별할 것도 없는 청계천, 을지로 거리를 찍어보다가

어떤 것들은 아무리 애를 써도 그냥 사라진다 그렇게 잡아두려 애썼던 것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행복이란 과거를 회상할 때에만 가졌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인지
오늘 스물 두 살 이후로는 자기 나이가 어색하다던 언니에게 스물 두 살 때와 같은 결정을 내릴 수가 있느냐고 물었다 물론 서른이 된 언니는 그럴 수 없고 그 시절의 자신을 그리워할 뿐이다 누구나 그렇겠지 지나고보니 그 시절은 행복했다고 믿는 모양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스물 세 살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내 전부를 줄 수 있을 것 같다 영원히 스물 세 살로 살아갈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저주 받은 것처럼 늙어가겠지
어떤 것들은 스쳐지나갔지만 오랫동안 떠오른다 막상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상한 기억들만 남게된다 누군가에게 불멸하는 존재로 남는 것은 온전히 그사람 몫이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에밀 시오랑은 우리 안에 생각이 하나씩 생겨날 때마다 우리 안의 무언가가 부패하고 있는 것이라했다 어쩌면 다들 부패하여 백골만 남은 속내를 끌어안고 사는 것이 아닐까